바흐의 음악은 심연에서 떠오르는 맑은 공기방울처럼 신비롭고 미스테리하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단순한 선율에서 파생되고 반석같은 엄격함 속에서 한계가 없는 자유로움을 노래한다.

바흐의 걸작 중 하나인 무반주 첼로 조곡을 12개의 첼로를 위해 다시 탄생시키는 것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하는 것과 같았다. 가공사의 정밀한 손끝에서 눈부신 보석이 만들어지듯 처음부터 이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세공해야 했다. 이제는 어린 음악도들도 심심치 않게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조곡 안에는 한계없는 상상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 숨겨진 아름답고 고귀한 선율들을 조금씩 어렵게 발견했을 때마다 환희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바흐의 첼로 조곡 중 1번을 기초로 선택한 것은 1번이라는 상징과 함께 조곡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바흐의 다른 작품들처럼 삽입된 당시의 대표적인 세속 리듬과 풍부한 선율들은 1번 조곡을 12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2대의 첼로를 위한 작품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1번 조곡의 선율을 강조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바흐의 평균율 곡집 1번의 프렐루드에 선율을 얹은 것 만으로도 독자성을 확보한 것처럼 바흐의 기반에서 특별함을 찾은 과정은 어렵고 지난했지만 필요한 작업이었다. 실마리를 찾은 것은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가 1770년대 초부터 작곡한 콘체르탄테였다.

바로크 시대까지는 협주곡과 교향곡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고 이 둘을 섞어 놓은 듯한 형태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 콘체르탄테는 각 악기군의 대위적인 움직임을 통해 조화를 만들지만 모 든 악기에 독주를 배분하여 독자성을 강조하는 형식이다. 12 첼리스트를 위한 가장 적절한 음악 형식이 아닐 수 없었다. 바흐의 조곡을 기반으로 하여 최대 8성부까지 대위적인 대선율을 작곡하였으며 바흐가 의도한 당시의 민속 리듬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마지막 지그만은 빠르고 역동적인 지그의 리듬과 영국의 민속리듬을 결합하여 보다 강렬한 맺음을 의도하였다. 캐논과 푸그의 기법이 활용되었으며 모든 대위적인 선율들은 바흐시대의 대위적 선율 법칙에 따른다.

바흐의 조곡 1번은 한음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지만 악기간의 배분을 통해 역동성과 재미를 더하였다. 이 작품은 이 놀라운 세계를 구축한 바흐와 이번 음악제에 참여한 놀라운 12명의 첼리스트에게 헌정하였다.

글ㅣ류재준


<aside> 👈 이전 곡 해설로 가기 :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 - 소프라노와 12대의 첼로를 위한 브라질풍의 바흐 5번

</aside>

<aside> 👉 다음 곡 해설로 가기 : 아르보 패르트 - 형제들

</aside>

<aside> 📘 이전으로 가기

</aside>

<aside> 🏡 홈으로 가기

</aside>

👉 2021 서울국제음악제 전체일정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