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이자 서울교대 음악교육학과 교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의 연구원인 남상봉은 음악과 기술의 융・복합, 악기라는 매체의 확장과 재발견에 천착해온 음악가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두이면서 동시에 일상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온 인터넷,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을 음악과 예술에 접목하고 이해하여 창작에까지 나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5년 작 <솔로 엠포이(mPoi)를 위한 쥐불>은 전자음과 빛을 활용한 무대종합예술작품으로서 전통 쥐불놀이의 시각적 효과를 청각적으로 재해석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현란하게 빙글빙글 돌지만 줄에 매여 줄의 길이만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지와 화려하지만 맥락이 결여된 듯한 음향은 전자기기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곡가의 장치라고 해석하였다. 또 <네 대의 국악기를 위한 “술술”>에서는 앙상블과 솔로 사이를 오가는 네 대의 악기가 풀어내는 음악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조화와 긴장 양면성을 읽을 수 있었다.
2021년 서울국제음악제의 위촉 작품으로 오늘 초연될 <기묘한 놀이공원>은 일상의 공간이었던 놀이공원이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가서는 안 될 금단의 공간으로 변모한 현실을 모티프로 하여 작곡한 작품이다. 작곡가는 작품노트에서 “팬데믹에 갇혀 버린 놀이공원은 꿈과 환상마저도 갇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주는 동시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의 신비로움을 증폭시키는 기묘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상상된 놀이기구 등을 음악적 소재로 하여 놀이공간의 이미지를 소리로 형상화한 음악이다. 필자는 이 작품이 남상봉의 2015년 작 <태엽장치 장남감>의 문제의식과 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작은 기계가 내는 소리가 현대 도시인에게 친숙하고 또 그 자체가 현대인의 일상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반대로 <기묘한 놀이공원>은 작은 기계 하나가 아니라 많은 놀이기구가 모여 있는 놀이공원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또한 이제 놀이공원은 평소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서 즐기는 북적이는 공간이 아니라 팬데믹으로 사람이 없어진,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유토피아(없는 공간)로 변모하였다.
작곡가는 작품노트에 “악기는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 그리고 피아노로 구성된 피에로 앙상블(pierrot ensemble)이라 불리는 편성이 사용되었다. 놀이공원의 신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리드믹한 패턴들의 반복과 전개에 집중하였는데, 이를 위해 앙상블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타악기처럼 운용했다. 전통적인 현악 4중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비올라가 없고 바이올린이 하나만 사용되는 이 편성은 현악 4중주가 줄 수 있는 화성적으로 균형 잡힌 풍부함 대신에 리듬적인 역동성을 더 부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썼다. 실제로 5연음과 4연음, 3연음, 2연음이 잇달아 나오는 리듬, 스타카토와 트릴, 폭 넓게 움직이는 분산화음은 놀이기구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남상봉은 “코로나 블루와 같은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이 음악이 잠시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작품노트를 맺는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놀이공원을 꿈꾸는 시간을 향유하면 좋겠다. (연주시간 10~15분 예상)
글 | 김인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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