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19세기와 20세기의 교차점에서 인상주의 음악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프랑스의 작곡가이다. 그는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아 감각적인 화성과 불분명하고 모호한 경계와 진행, 색채적인 음색을 강조하여 표현하였고,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으로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순간적인 인상이나 분위기를 포착하여 표현하는 음악을 추구하였다.
오늘 연주할 <잊힌 노래들>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의 시를 가사로 작곡한 작품으로 드뷔시의 초기가곡에 속한다. 자신의 시집 첫머리에서 “무엇보다 먼저 음악을”이라고 쓸 정도로 시와 음악의 접점을 포착하여 시어의 음악성, 언어가 환기하고 암시하는 힘을 의식한 베를렌의 시를 가사로 삼았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드뷔시가 베를렌의 시집 <Romances sans paroles 말없는 연가> (1874)에서 6편의 시를 발췌・작곡하여 1888년에 출판된 드뷔시 최초의 가곡집이다. 초판은 <Arriette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15년 후인 1903년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성공을 거둔 후 <Ariettes Oubliées>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원곡은 소프라노와 피아노 반주로 구성되었으나 오늘 연주에서는 현악4중주가 피아노 파트를 맡는다.
연인을 자연의 움직임과 소리(바람, 나무, 풀, 새소리, 물소리, 조약돌 등)에 비유하여 묘사한 시를 기반으로 하여 가슴의 두근거림 같은 연애의 심정을 선율과 리듬으로 표현하였다. A-B-C 3부 형식을 가졌고 E장조이나 반음계, 선법 등을 사용하여 조성감은 모호하다.
이 시는 베를렌이 아내를 버려두고 시인 랭보와 런던에 머물 때 지은 작품으로 번민과 우울, 죄의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을 빗소리에 담았다. 1곡처럼 조성은 모호하다.
랭보의 권유로 읽은 시를 모티프로 삼아 쓴 시로서 희망을 잃은 시적 자아의 슬픔과 절망을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안개에 가려 사라진 나무그늘을 슬퍼하는 모습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반주부 도입부에 제시되는 셋잇단음표와 테누토의 리듬이 곡 전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5음계의 사용으로 조성감은 희미해진다.
랭보와 함께 벨기에의 작은 마을 장터 유원지에서 회전목마를 탄 후 쓴 시로서 목마를 타는 즐거움보다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회전목마의 부정적 상징성을 시니컬하게 노래한다. 반주부에서 32분음표를 오스티나토로 반복하여 회전목마를 표현하며 액센트와 스타카토, 트릴 등이 곡의 분위기를 만든다.
영어 제목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연인에게 구애하는 마음을 아침이슬, 바람, 꽃, 나뭇잎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헤미올라 리듬의 사용으로 규칙적인 박절감이 모호해진다.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풀어지고 늦춰지는 음악은 연인 옆에서 잠든 모습을 표현한다.
바로 앞 곡에서의 행복감과 평안함은 이 곡에서 순식간에 절망으로 급전직하한다. 베를렌은 랭보와 아내인 마틸드 모테 모두 사랑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간의 기쁨일 뿐 남는 것은 공허함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붉은색 장미와 검정색 담쟁이, 파란색 바다와 하늘을 색채적으로 대조시켜 내면의 모순을 표현하는 듯하다. 당김음 리듬은 불안한 감정을 고조시킨다.
글 | 김인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