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꿈도, 사랑의 꿈도 버려야만 했던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1838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빈에 체류했다. 스승이자 연인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와의 사이가 크게 나빠지면서 라이프치히에 더는 머물기가 어려워진 탓이었다. <아라베스크>는 이 기간에 작곡된 곡으로, 1838년 말부터 1839년 초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슈만은 이 작품을 가벼운 마음으로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1839년 8월 11일에 그의 친구인 피아니스트 앙리에트 포이크트(Henriette Voigt)에게 “<아라베스크>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은 아니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흐름과 선율은 앙증맞고 부드럽지.”라고 썼다.
<아라베스크>는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 비교적 밝은 분위기에 속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앞서 작곡된 <어린이 정경, Op. 15>(1838)와 연결된다. 하지만 향수 어린 우울함도 언뜻 내비친다. 이러한 상반되는 특징의 대비는 슈만의 작품에서 으레 언급되는 두 성격의 상징, 즉 밝고 외향적인 플로레스탄(Florestan)과 진지하고 내성적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의 모습으로 읽힌다. “그 그림은 화가의 음악이 되고, 음악가는 음악에 그림을 그린다.-E. 어떤 장르의 예술이 갖는 미학은 다른 장르의 미학이기도 하다. 단지 재료만 다를 뿐.-Fl.”
그런데 슈만이 처음 생각한 제목은 ‘아라베스크’가 아니었다. 1839년 1월 26일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변주곡의 작곡을 끝냈어. 그러나 주제는 없지. 나는 이 작품을 ‘화환’이라고 부르고 싶어. 이 곡만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섞어서 작은 론도가 만들어지지. 그리고 온갖 예쁘고 귀여운 것을 많이 넣었고, 그래서 ‘작은 꽃의 소품’이라고 부르지. 그림처럼 말이야.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라베스크’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이 말은 본래 ‘아라비아풍’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사원에 그려져 있는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무늬를 말한다. 어디선가 본 아라베스크가 꽃처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국적인 제목으로 빈의 애호가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듯, 여러 화사한 주제가 반복하는 모습이 아라베스크의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
글 | 송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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