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는 1938년 뉴욕의 음악가 가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23년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으며, 어머니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다. 코릴리아노는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에 걸쳐 미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이자 생존하는 작곡가 중 자신의 이름을 딴 현악4중주단이 있는 몇 안 되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의 보조 프로듀서,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 음악 감독, 시카고 교향악단의 첫 상임 작곡가로 활동했다.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 실내악, 독주곡 등 100여곡이 넘는 그의 작품들은 그라베마이어 상, 그래미 상, 퓰리쳐 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레드 바이올린’(1998)의 음악으로 오스카 상을 수상했다. 코릴리아노는 줄리어드 음악원과 뉴욕시립대학교 리먼 음악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미국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작곡가인 그는 음악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음악은 전통과 혁신의 완벽한 결합이다.”(작곡가 크리스토퍼 라우즈),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뇌를 우회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말한다.”(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일상적인 영역을 넘어 확장된 공간에 있게 만드는 최상의 목표를 달성한다. 나에게 이것은 위대한 예술이 의미하는 바이다.(지휘자 마린 알솝), “그의 음악은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고양시킨다.(기타리스트 샤론 이즈빈), “코릴리아노와 내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느낀다.”(첼리스트 요요마) 등 그에 대한 찬사가 줄을 잇는다.
코릴리아노의 <키아로스쿠로>는 마이애미에서 2년마다 열리는 머레이 드라노프 국제듀오피아노콩쿠르의 경연곡으로 1997년에 위촉된 작품이다. 코릴리아노는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나는 이미 1959년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만화경>(Kaleidoscope)을 작곡했는데, 이 매체에서 더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피아노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같은 소리이며, 단지 또 다른 연주자를 추가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피아노 한 대를 위해 작곡할 수 있는데 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써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마감일이 다가오고 나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마침내 떠오른 생각은 두 대 중 한 대의 피아노를 미리 ‘준비’해서 두 대의 피아노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 사이에 물체를 삽입하는 존 케이지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피아노 중 한 대를 다른 피아노보다 1/4음 낮게 조율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피아노는 각각 완벽하게 조율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악기들이 함께 연주될 때 섬뜩한 효과와 불협화음을 만든다. 예를 들어, 한 피아노의 G음은 다른 피아노의 G음과 F#음 사이의 음으로 울리는 것이다.”
작품명 ‘키아로스쿠로’는 빛을 뜻하는 ‘키아로’와 어둠을 뜻하는 ‘로스쿠로’가 합쳐진 회화용어로, 명암법, 명암효과를 의미한다. 코릴리아노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이 기법을 조율을 다르게 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회화적 상상력을 음악에 효과적으로 실현했다.
제1곡 ‘빛’은 짧고 강렬한 곡으로 위를 향해 뻗어가는 음직임이 특징적이다. 고음에서 울리는 쨍한 빛과 이를 뒤따르는 낮게 조율된 피아노의 음침한 울림이 대조를 이룬다. 제2곡 ‘그림자’에서는 소리가 아른아른 흔들린다. 이 곡은 피아노의 음정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차이들이 더해진다. 코릴리아노는 두 연주자에게 특정 부분에서 음형의 연주 순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동일한 음형을 다른 속도로 연주하게 함으로써 이 둘의 차이를 강화한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과 뒷면에 드리워지는 그늘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제3곡 ‘섬광’에서는 빛과 어둠이 강하게 충돌하며 불꽃 튀는 투쟁이 일어난다. 날카롭게 대립하는 두 피아노는 중간에 잠시 화합을 이룬다. 두 피아니스트는 표준음으로 조율된 한 피아노에서 16세기 작곡가 부르주아의 코랄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함께 연주한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회화법인 키아로스쿠로와 음악양식인 코랄을 연결시킨 이 장면에서 코랄은 매우 도드라지게 드러나 극적으로 표현된다. 두 피아니스트는 이 부분에서도 리듬을 달리하며 차이를 강조한다. 이내 이 둘은 다시 떨어져 불협화음을 일으키는데, 코릴리아노는 마지막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두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조율이 표준이라고 주장하듯이 투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립적이지만 숙명적인 관계인 명과 암의 극명한 대비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곡이다.
글 | 서주원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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