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곡가 라벨은 완벽을 추구한 세련되고 우아한 신사였다. 그는 고결한 예술가의 양심, 엄정한 창작 태도를 지녔다. 스트ㄴ라빈스키는 라벨을 스위스 시계 장인이라고 비유했다. 파리음악원 출신의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였던 그는 당시 작곡가들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도전했지만 부정심사 의혹에 휘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은 프랑스 문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파리음악원장인 테오도르 뒤부아가 사퇴했다. 훗날 프랑스 정부는 음악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라벨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려 했으나, 이전의 불공정한 처사를 기억하며 가차없이 이를 거절했을 만큼 라벨은 성품이 올곧았다. 평생 독신으로 산 라벨은 어린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그 사랑스러운 눈길이 <어미 거위> 모음곡 장면 장면에 담뿍 담겨있다.
라벨은 1908-10년에 친구의 아이들인 장과 미미를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원래 두 명이 한 대의 피아노에서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으로 작곡했는데, 라벨은 간결하면서 시적 착상이 풍부한 이 작품을 1911년에 관현악 모음곡으로, 새로운 곡들을 추가해 1912년에 발레 음악으로 만들었다. 환상적인 피아노곡들을 작곡한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도 유명했다.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을 라벨이 관혁악곡으로 편곡한 작품은 원곡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 묘사적이고 강렬한 음악적 심상이 담긴 라벨의 피아노 작품들은 대개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물의 유희>, <밤의 가스파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에서 탄생한 라벨의 음악동화인 이 <어미 거위>는 간결하고 친밀한 표현과 아기자기한 구성이 돋보인다.
17-8세기의 프랑스 동화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총 5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특정한 장면을 묘사한다. 1곡 ‘잠자는 숲속의 공주 파반느’는 마법에 걸려 깊은 잠에 빠진 공주의 이야기이다. 꿈결에 들리는 자장가처럼 나른한 선율에 애잔한 슬픔이 실린다. 2곡 ‘엄지동자’는 숲에서 돌아가는 길 표시로 뿌린 빵조각들을 새들이 먹어버려 엄지동자가 길을 잃는 광경이다. 불안하게 숲속을 헤매는 가운데 새소리가 불길하게 들린다. 3곡 ‘탑의 여왕 레더로네트’는 마녀의 저주로 추해진 레더로네트를 위해서 작은 인형들이 부르는 이국적인 노래다. 오밀조밀한 움직임이 앙증맞고 흥겹다. 4곡 ‘미녀와 야수의 대화’는 야수가 된 왕자의 마법이 미녀의 사랑으로 풀리는 이야기이다. 경쾌한 왈츠 리듬은 미녀를, 낮게 웅얼거리는 선율은 야수를 나타낸다. 5곡 ‘요정의 정원’은 마법에 걸린 잠자는 공주를 왕자가 깨우는 장면이다. 첫 1곡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감각을 깨우는 찬란한 음향이 불꽃놀이같이 팡팡 터진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 작품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글 | 서주원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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