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의 아버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는 으뜸음이 파악될 수 없도록 하여 조성을 제거하고 불협화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조성이 없는 음악, 즉 무조성 음악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20세기 음악을 특징짓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실 쇤베르크는 자신이 고전 음악의 전통에 있음을 강조하며 전통의 많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래서 음악사학자 윌리엄 W. 오스틴은 쇤베르크의 음악을 “브람스와 바그너의 조화”로 보았고, 저명한 미국 작곡가 애런 코플란드는 “쇤베르크는 감성적으로 여전히 19세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쇤베르크의 핵심을 가장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현악육중주곡 <정화된 밤>이다. 이 곡은 무조성 작품을 쓰기 이전의 작품이지만, 모호한 박자감과 자유롭게 유영하는 화음은 훗날 불협화음의 접근을 예견한다.
<정화된 밤>은 1899년 여름에 쇤베르크가 작곡 스승이자 친한 친구였던 알렉산더 쳄린스키의 여동생 마틸데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단 3주 만에 완성되었다. (마틸데는 후에 쇤베르크의 아내가 된다.) 이 곡은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의 동명의 시에 따라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전형적인 ‘프로그램 음악’의 특징을 띄는, 실내악을 위한 음악시(tone poem)이다. 두 남녀가 달빛 비치는 숲을 거닐고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한다. “저는 아이를 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이는 아니에요. 저는 죄를 지은 채로 당신 곁에서 걷고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한다. “우리의 온기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정화할 것입니다. 저의 아이인 듯이 낳으세요.” 그리고 그는 여자를 감싸 안아 키스한다.
쇤베르크는 빈 악우협회에 이 곡의 초연을 의뢰했으나 거절당했다. 화성법에 존재하지 않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화음을 사용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쇤베르크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연주할 수 없기에 이 곡은 연주될 수 없다”라고 비꼬아 말했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트리스탄>에 덧칠해놓은 것 같이 들린다.”라는 유명한 비판도 악우협회의 심사 중에 나온 말이었다. 또한 데멜의 시가 가진 성적인 주제도 거절 사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1902년 3월 18일 빈 악우협회에서 로제 사중주단과 프란츠 옐리네크, 프란츠 슈미트에 의해 초연이 이루어졌고, 청중들은 이 곡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쇤베르크의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자, 중요한 실내악 레퍼토리가 되었다.
글 | 송주호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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