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렌스키는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일찍부터 음악을 배워 9살에 작곡을 시작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는 18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사사하고 3년 만에 우등상을 수상하고 졸업하였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된 아렌스키는 이 시절에 차이콥스키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아빈 등을 가르쳤다. 1895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을 나와 러시아 민족악파 5인조의 리더 격인 발라키레프의 추천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제국성당 합창단의 음악감독이 된 아렌스키는 연금수령을 위한 근무연한을 채운 1901년에 퇴직하여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로 활동하였으나 만성적인 알코올중독과 지병으로 45살이 된 1906년에 사망하였다.
아렌스키는 1893년에 세상을 떠난 차이콥스키를 추모하여 이 작품을 썼다. 러시아 민족음악의 정체성에 서유럽 음악을 적절히 수용하여 융합한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아렌스키를 징검다리 삼아 이후의 러시아 음악의 발전방향에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한다면 아렌스키는 차이콥스키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그를 진정으로 존경한 게 아닐까. 아렌스키는 악보 서두에 인용문으로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Thême religeux 종교적인 주제
Variations sur un thême de P. Tchaikovsky 차이콥스키 테마에 의한 변주
La messe de Requiem 진혼미사
Chant national 애국찬가
위의 프로그램이 이 작품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독특한 편성은 음향적 효과를 담당한다. 일반적인 현악4중주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되나, 아렌스키는 바이올린 한 대를 빼고 첼로를 한 대 추가하였다. 이는 음색과 음향을 어둡고 깊게 하여 추모곡에 어울리는 효과를 내기에 적절하다. 나중에 아렌스키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일반적인 현악4중주 버전도 쓴다.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의 도입부에서 약음기를 낀 4대의 현악기가 러시아 정교회의 장례식 음악의 주제를 연주한다. 제1주제가 간결하게 확장된 후 온화한 제2주제가 나타난다. 발전부에서는 두 주제가 느린 토막들로 가공되었다가 템포가 빨라지면서 음악을 밀고 당긴다. 재현부에서는 여러 조성을 오르내리며 주제들이 연주되다가 도입부의 주제가 나타나고 서서히 사라진다.
2악장의 주제는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16개의 노래, Op.54> 중 5번 ‘전설’에서 가져왔다. 아렌스키는 원곡의 조성인 e단조를 채택하여 8마디 동안 연주되는 주제를 바이올린이 연주하게 한다. 이때 다른 악기들은 피치카토로 연주한다. 7개의 변주곡은 느렸다가 빨라지고, 조용하다가 시끌벅적해지는 등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변주가 끝나고 2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차분하고 어두운 코다로 돌아와 1악장 도입부를 상기시킨다.
3악장은 2악장의 마지막 부분과 1악장의 도입 부분을 활용한 짧은 서주로 시작하는데, 연주자들은 약음기를 장착하여 연주한다. 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비올라의 등장으로 깨진다. 이 부분이 위의 인용문의 애국찬가에 해당하는데,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와 베토벤의 <현악4중주 ‘라주모프스키’ Op.59, No.2>를 연상시키며 힘찬 대위법으로 전개된다.
글 | 김인겸 (음악칼럼니스트)